썸일까, 어장일까?

Posted by 한입언니
2025. 4. 3. 12:10 연애, 일상
나는 그 오빠를 좋아하지 않았다. 그런데 잃고 싶진 않았다.

나는 그 오빠를 좋아하지 않았다. 그런데 잃고 싶진 않았다. – 썸일까, 어장일까?

“나 동대문 가는데, 같이 가줄 수 있어요?”

그 오빠는 매번 “그럼요.” 하며 나를 데리러 온다.

고맙긴 하다. 내 친구들은 말한다. “그런 오빠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?”

그 오빠는 복학생이다. 기름값도 엄마한테 용돈 받아서 겨우 넣는다고 했다.

차는 오래됐고, 브레이크 밟을 때 끼익, 소리가 난다.

그래도 어디든 데려다준다.

동묘, 남대문, 심지어 새벽시장까지도.


“밥은 먹었어요?”

나는 밥 사달라고 한 적 없다. 근데 오빠는 항상 물어본다.

“밥은 먹었어요?” “시장 돌면 출출하잖아요.”

그렇게 밥을 사주고 커피도 사준다.

나는 고맙다고 말하지만, 솔직히 당연해진 것도 있다.

오빠는 나를 좋아한다. 나는 안다.

그 눈빛. 그 어정쩡한 웃음. 말끝마다 묻어나는 조심스러움.


그런데 나는 그 오빠를 좋아하지 않는다.

사귄다면 불편할 것 같다.

감정 기복도 커 보이고 너무 순해서 좀… 지친다.

그래도 잃고 싶지는 않았다.

오빠는 나에게 없던 헌신 같은 걸 줬다.

새벽 4시에 시장 가줄까? 그런 말, 아무도 한 적 없었다.

그래서 내가 먼저 연락했다.

“요즘 잘 지내요?” “그때 소개해준 사입처, 다시 같이 가볼래요?”


나는 사실 알고 있다. 이용하고 있다는 걸.

내가 밥을 안 사도 오빠는 항상 계산한다.

손도 한 번 안 잡는다.

그런 오빠가 편했다.

한 발짝 내가 더 나가지 않는 이상 우리는 계속 지금처럼 ‘편한 사이’로 남는다.

“우리 어디까지 가는 걸까?” 오빠가 물었을 때, 나는 말했다.

“오빠 너무 좋은데, 지금은 누구를 만날 준비가 안 됐어요.”

정확히 말하면, “오빠랑은 사귀고 싶지 않아요.”


그 오빠는 자고 나면 손절할 생각이었다고 한다.

며칠 전, 오빠의 친구가 말했다.

“얘, 자고 나면 얘랑 끝낼 거야.”

그 말을 들은 순간 가슴이 이상했다.

나는 그 오빠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잃는 건 왠지 싫었다.

누군가가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안정감, 그 감정이 사라지는 게 슬펐다.


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,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.

그 오빠도 나도 서로의 외로움을 채워주고 있었을 뿐이었다.

지금도 오빠의 톡은 안 읽음으로 남아 있다.

Writings